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11일 째, 다시금 이르크추크로
이번 챕터는 가장 빈약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어제 바이칼 호수에 떠다녔던 엄청난 경험을 한 다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내게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더 묶느냐 마느냐는 것이다.
자유여행의 일정이 급하지 않고, 니키타 하우스에 더 가보고, 더 알고 싶고,
나스타샤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조식으로 커피와 삶은 달걀, 빵과 버터, 잼을 먹으면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느냐 스프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스프에 빵 찍어 먹는 모습을 보고
한 접시의 크림 스프를 숭늉 마시듯 한그릇 다 비웠다.
대전 청년이 배낭을 메고 식당에 들어와서
형님 이르크추크 안가세요? 라고 묻는다.
아차, 대전 친구는 오늘 이르크추크에서 한국행 저녁 비행기 타지...
부천의 교환학생도 뒤따라 들어와 인사하고 마중해주겠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그래서 나도 떠나기로 했다.
여행에서 남겨두어야 다음에 반갑게 올수 있으리라.
이곳에 니키타 하우스와 유리 전망대 그리고 나스타샤가 그런 존재일 것이다.
짐챙겨 나오니 9시가 가까왔다.
문밖으로 배낭을 내놓고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대전 친구는 미리 게스트하우스 리셉션 룸에서 1500루블로 표를 끊고
태우러 오기를 기다린다 했다.
나는 부천의 교환학생에게 어떻게 할까 물으니 그냥 빈자리 있을테니
차오면 요금 내고 타라고 한다. 굳이 게하 리셉션 룸 이용안해도 된다고 한다.
그에게 어제 주기로 한 1천루블을 주니까 안받으려 한다.
그 전날의 술심부름하고나서도 400루블 받은게 있고 떡볶이 얻어 먹은 것도 있어서
괜찮다고 극구 사양한다
난 그냥 큰돈 아니고 내 조카 같아서 차비 조금 주는거라고...
네가 나중에 알바 마치고 이르크추크로 갈 때 차비 보태 쓰라고 했다.
차가 도착해서 요금을 물어보니 ㅎ 천백루블 내라고 한다.
아싸 사백루블 굳었다.
역시 러시아어 잘하는 친구가 있으니 눈탱이 안맞아서 좋았다.
눈물 글썽이는 부천의 교환학생를 두고 버스를 타고 이르크추크로 떠났다.
들어올 때의 역순으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이르크추크로 떠났다.
대전의 젊은이도 나도 피곤해서인지 계속 잠을 잤다.
중간에 휴계소에 도착해서도 식사도 안하고 계속 차안에서 잤다.
이르크추크에 중앙시장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네시정도 되었다.
매우 시장해서 지도를 검색해보니 근처에 서브웨이가 있었다.
약 삼천원 정도 되는 서브웨이 세트 메뉴 하나씩 먹고 그는 공항으로
나는 기차역쪽으로 트램을 탔다.
선로가 있고 전기선이 있는 노선 버스이다.
버스 안에 차장도 있어서 약 10루블 정도 받으면서 우표와 같은 영수증도 준다.
잼있다. 관광지에 이런 트램도 잼있는 것 같다.
블라디보스톡에서 2박3일 기차를 타고와서 내린 이르크츠크 역이다.
4일 전의 일인데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흐른것 같다.
중앙시장에서 1번 트램을 타면 이십분도 안되서 도착하는데...
굳이 바이칼로 떠나기 전의 호스텔에 가지 않았다.
아직 5시 밖에 되지 않았고, 노트북하고 핸드폰의 밧데리, 보조 밧데리도 충분하여
대합실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예약을 시도해보려 했다.
대합실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보니 각종 콘센트로 구비되어서 전기를 얻어 쓸수도 있었다.
러시아 철도 공사 싸이트에 접속해서 각 시간대로 알아보니,
헐, 오늘 10시 모스크바 출발 기차가 있고 3등석 여러군데가 비어있었다.
그래도 1층 침대는 없었다.
2층 침대는 여러개가 비어있었는데 그래도 한번 경험해봤다고 창가쪽도 안잡고,
화장실쪽도 피해, 차장과 가까운 쪽 두번째 칸 2층 한 좌석을 예약했다.
18만원 정도? 카드로 결제하였다.
이제 티켓을 출력해서 짐을 보관한 다음, 출발 시간 전까지 이르크츠크 관광을 하면 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은게 이곳은 러시아에서도 시골, 조금 낙후된 이르크츠크란 점이다.
일단 모스크바나 상크페테브르크 같이 인터넷 까페도 없다.
대 도시는 커피 한잔 마시면서 출력 서비스 받을 곳이 많지만 여기는 그게 쉽지 않았다,
또 영어가 쉽지 않다.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인터넷에 있는 티켓을 출력해가야만 아무 소리 않고 실제 티켓으로 바꿔준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그 티켓이 비자이고, 체류 허가증이다.
블라디 보스톡에서는 호스텔에서 디아냐가 출력해주었지만 여기서 꼴랑 출력 하나 하기 위해
짐을 들고 다시 호스텔을 찾아 간다는 건 난감 한 일이다.
유심 파는 곳이나 몇몇의 상점을 돌아다녀봐도 프린터 자체가 없거나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 때, 대합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큰 한국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다른 카드 없어? 한도 초과 나와..."
ㅎ 한국의 젊은 청년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반바지에 슬리퍼, 스포츠 나시에 선그라스를 멋지게 머리위로 걸친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가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로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머여 중국인이여 창피하게 한국말로 동네방네 큰소리 내고 있어.
누가 물어보면 차이니즈라고 매너 없다고 말해야지 짐작하고 있을 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에 눈에 반가움과 간절함이 읽힌다.
어라? 그는 카드를 카운터에 들이대며 능숙한 러시아어로 여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호오 의외네 아주 능통하게 러시아어를 하는구나 하고 흥미롭게 지켜봤다.
"어 엄마 안된대, 방법이 없겠어? 어떻해?"
내가 그에게 다가가 "왜 그래요 머 도와줘요?"말하니
그가 구세주를 만난듯, 내게 도와달란다
멀 어떻게 도와줄까요?
그는 다음주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기차 티켓을 예매하러 왔는데
가지고 온 엄마 카드가 한도 초과되어 티켓을 예매할 수 없다고 한다.
그걸 내가 어떻게 도와주죠?
내 카드로 대신 결제해주면 한국에서 돈을 부쳐준댄다.
난 솔직히 사기내지는 보이스 피싱 같았다.
이 머나먼 러시아에서 멀 믿고 내가 그의 기차 비용을 결제해준단 말인가?
그걸 어떻게 믿고 결제해줘요? 라고 뒤돌아서려니까
그가 간절하게 내 팔을 잡고
"그게 아니구요. 그럼 먼저 통장으로 선입금 해줄께요.
돈 들어온거 확인 할 수 있으세요?
돈 먼저 받고 카드로 결제해주면 되잖아요?"라고 방법을 설명한다.
아, 이런 신박한 놈
난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문자로, 인터넷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해요 하면서
러시아 철도공사 싸이트를 다시 열고
그에게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시간, 열차를 선택하라니까
냉큼 일주일 후에 이등석 좌석 두장을 선택한다.
헐 나도 삼등칸 타는 데 겨우 스므살 즈음의 어린애가 이등칸을 타네...
또 왜 두장이지 생각하면서 카드 조회를 하니까
68만원 잔돈 얼마의 돈이 카드로 예상되었다.
그는 69만원 넣어주겠다고 내 계좌번호를 묻더니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나도 카톡 인터넷 전화를 쓰는데 바로 로밍된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다.
엄마에게 내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나서 오분도 안되어
내 인터넷 계좌에 입금 신호가 들어왔다.
69만원 현금 입금.
나는 인터넷 결제해요 아님 카드로 카운터에서 결제할까요? 물어봤다.
그는 상관 없다했다
나는 내 티켓도 있고해서 그의 여권번호등을 채워넣으라한 다음.
그가 다 끊다다고 결제해달라고 해서 카드로 결제해주었다.
난 일시불이 아닌 5개월 무이자로 ㅎ
그에게 그의 티켓 인보이스와 내 티켓 인보이스를 출력해야 한 다음,
그를 카운터에 제출하여 실제 티켓으로 바꿔야 한다니까
내 노트북을 잠시 달라더니...
카운터에 능숙하게 러시아어로 말하니까
잠시 후, 실제 내 티켓하고 그의 티켓을 출력해 주었다.
와우 신박한 놈. 진짜 러시아 어 잘하네.
애들은 이렇게 가끔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운다. ㅎ
그에게 인터넷등으로 정보를 조회하니 이렇게 인보이스 없이 실제 티켓만 있을 경우
차장이 잠들었거나 그 티켓이 분실되었을 경우 비자도 없는 상태에서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 이 티켓을 복사하자니까
그는 잠시 기다려달라면서 내 티켓과 자신의 티켓까지
카운터 여직원에게 복사해달라고 능숙한 러시아어로 말하고,
그 여직원은 또 그를 해주었다.
참 영악하고 엄청난 친구였다.
내게는 봉이 김선달 같이 러시아에 대동강 물 팔아먹은 친구 같았다.
고맙다고 감사를 표시하고 짐을 맡기러 가려는데 그가 한번 더 부탁한다고 했다.
러시아 돈 사만루블 한번 만 더 도와달라는 것 이다.
어라 칠십만원이 넘는 돈을?
이걸 도와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이 어린 친구가 왜 그런 적지 않은 돈을 깡, 환치기하는 것 같은걸 요구하는지
또 이걸 해줘도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는 내가 망설이자.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엄마가 부자라고...
아주 철딱서니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계속 망설이자 오늘 환률에 10% 더해주겠다고 한다.
이 어린 놈이 어디서 나쁜거만 배워가지고 딜을 하려한다.
내가 그깟 돈 칠만원 때문에 도와줘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
그는 또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요구한다.
계산기로 계산된 팔십이만원을 더 넣으라고...
그 엄마도 희안한게 해주겠다고 하는지 오분도 안되어 또 내 폰에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떳다.
그와 은행이 있는 로비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느 작고 예쁜 러시아 여자가 다가오더니
그의 팔장을 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여자애의 볼을 꼬집는다.
에휴...
자신은 러시아, 모스크바로 음악 유학을 왔다고 한다.
그 여자애는 애인이고 지금 여름 휴가 차, 이르크츠크에 왔다고 한다.
그래 젊은게 자랑이고 위세다.
그렇다고 엄마돈을 펑펑 쓰냐?
이런 아들 놈 없는게 더 낫겠다 싶었다.
은행 CD기로 4만 3천 루블을 찾아 그에게 전해주니 입이 귀에 걸렸다.
삼천 루블을 내게 내민다.
약속 지킨다고...
내가 근엄하게 말했다.
돈을 내밀지 말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해라
난 돈보다 외국에서 곤경에 쳐해있는 동포를 도왔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보여지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돈은 액수가 아니고 개념이고 가치인데...
아무리 엄마가 부자라해도 아들이 돈 부치라고 했다고
그 사용처도 물어보지 않고 백오십만원이 넘는 돈을 부쳐주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한국이나 러시아나 그 돈으로 한달도 못 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누구는 돈이 있어 그 돈을 쉽게 쓰고 누구는 그 돈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했다.
예전에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무리 부자라해도 그 때는 다른 사람들이 힘드니까
아욱죽이나 근대죽, 김치 죽등으로 고통 분담하는게 더불어 살아가는 덕목이라 충고해주었다.
그는 떨떠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도와줬다고 꼰대짓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이르혼 섬의 그 부천 교환학생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서 뒤도 안돌아보고 그들에게 떠났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러시아에는 락커가 없다.
그냥 사람이 돈 받고 영수증 적어주며 물건을 보관해준다.
24시간 사람이 한다.
역내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따로 별도의 공간이 있다.
그곳에 짐을 맡기고 다시 램을 타고 가장 번화가인 젊음의 거리로 갔다.
이르크츠크 중심 상업지구의 비브르 동상
수달과 늑대의 중간 정도 동물?
이게 이르크츠크의 상징이다.
러시아의 각도시에는 아르바트 거리가 있다.
그냥 한국의 로데오 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곳에는 항상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의 미래가 있다.
아르바트 거리를 돌다가 저녁 무렵
역으로 돌아가 짐을 찾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크츠크까지는 2박 3일
이르크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3박 4일의 일정이다.
또다시 기나긴 기차 생활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