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16일째 _ 모스크바(2)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었다.
많은 비는 아니고 이슬이슬 우리나라의 봄비, 이슬비 정도?
이 곳 게하에는 빵도 맛있지만 우유를 한팩씩 주었다.
우유는 직장생활할 때 고지혈 때문에 안먹고 두유만 먹은지 오래여서인지
간만에 우유를 먹으니 매우 고소했다.
그래서 하나를 다 비우고, 하나 더 먹어도 되냐고 물어본다음
허락을 받고 나서 뜨거운 물 조금 끓인다음 커피 가루를 넣어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우유를 부어 라떼를 만들어 먹었다.
시나몬 가루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난 커피중에 카푸치노를 제일 좋아한다.
그것이 없다면 라떼 설탕 없이...
라떼와 카푸치노의 차이가 시나몬파우더가 아니고 크림의 농도 차이라는데
난 그건 잘 모르겠고, 커피 향이 무뎌지지 않을 정도의 크림 농도면 다 좋다.
준비해간 우의를 입고 이슬비내리는 붉은 광장을 갔다.
공사중이었다.
무슨 경마 쇼를 하려나보다 말이 그려지고 스탠드를 만든다고 표시 되어있다.
붉은 광장을 지나 바실리 대성당을 가려는데...
아침부터 서둘러 호스텔을 나와 바실리 성당과 크렘린 보러 나왔는데...
아차, 오늘이 한국날자로 8월15일 광복절이고
천주교 신자라면 기억하는 대축일중의 하나인 성모승천대축일이었다.
그를 마음에 두고 길을 걷다보니 크렘린과 굼백화점 사이의 작은 교회에서 미사가 있다.
그리스 정교인것 같은데...
오전10시에 신부님 성량도 엄청나고
전례하시는 세명의 여성분들 성가 수준도 장난 아었다.
작고 높아 그들의 성량만으로도 온 성당을 메아리치는데...절로 충만해지는 기분입었다.
나는 집안이 천주교이고 성당 활동을 주로 성가대에서 오래했기에 그들의 찬트에 대해
아주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너무 좋았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평화를 기원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더 많이 왔다.
바실리 성당에서 긴 줄 서다
200루블 주고 우산도 샀지만
이대로는 안될것 같아 비를 피해 도망 갔더만
마침 모스크바 시티투어 버스가 있었다.
그를 올라보니 1900루블이었다.
1. 버스 코스로 크렘린, 붉은 광장, 등을 주요 시내를 둥그렀게 라운드를 그리며 돌고 약 한시간 소요
2. 버스 코스로 주요 시내 코스를 도는데 어제 가봤던 우크라이나 호텔에서 회차한다.
두군데 다 이용해도 되니까 비싸지는 않은듯...
또 이어폰으로 영어로 안내도 받으니 나름 띄엄띄엄 가이드도 받는게 괜찮았다.
비 때문에 탔지만 나름 알찬 투어인듯
시티투어 도중 깜박 잠도 들었지만 어째튼 모스크바 1.2번 코스를 다 마치니 오후 세시가 되었다.
혁명광장의 레닌도 만나고...
표르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은 내일 상페테부르크로 출발 전에 가면 되니까
굳이 비오는 날에 가지는 않기로 했고,
지도와 인터넷을 통해 무엇을 할까 알아보니,
볼쇼이 발레 - 이건 음악과 쇼에 무지함에 가깝고 오천루블 이상의 고가이므로 패스
미처 가보지 못한 바실리 대성당은 줄이 너무 길어,
후, 중국인들...
이분들이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후의 상크페트부르크에서도, 에르미따쥬 미술관에서도 그렇고...
그 엄청난 인해전술을 뚫고 관광한다는게 너무 힘들었다.
유명 관광지의 경우 더 그렇다.
기본이 삼십분 한시간 이상 걸린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시끄럽다.
백미터 밖에서 봐도 중국인인게 티난다.
밖에서 보니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남여 모두 티난다.
서양인들은 구별 못해도 너무 차이가 난다.
적어도 한국인은 런닝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지는 않으니까 ㅎ
아르바트 거리도 걷고,
푸쉬킨 생가도 들렸다.
러시아 국립 도서관 앞에서 레닌 형님에게 경의도 표하고...
푸쉬킨 형님도 만난 김에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톨스토이님도 만나러 갔다
헐, 이건 요즘 말로 캐사기였다.
붉은 광장 옆 굼 백화점 뒷길로 레닌 동상쪽으로 나가는 길 중,
크리스피 도넛 지나 구글 지도로 우체국(지금 공사중) 앞에 있는
테르보리나 매장 70% 세일하는데
(ㅎ 70%세일 여긴 세일도 대차게 한다.)
샌들 보러 들어갔다가 사진의 컴포트 화 1400루블,
꼴랑 삼만원에 구두 한켤러 샀다.
난 구두를 최소 락포트급으로 신는 사람이다.
금강제화도 잘 안신는데
여기서 파는 구두의 가죽 재질이나 디자인 매우 훌륭했다
한국에서는 최소 12만원은 줘야할듯...
난 남자 구두만 봤는데...
핸드백과 여성화
아마 젊은 여성들 눈 돌아갈것이다.
브랜드 효과만 노리는 분이 아니고 디자인과 가죽 좋은걸로 오래 간직할 제품 원하시는 분은
한국 가파치의 삼분의 일 가격으로 물건 구할것이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톨스토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 톨스토이...
내 유년기의 인격 형성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대 문호.
그의 전쟁과 평화, 안나까라리나,
동화, 우화집,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그를 만나 감동을 어떤 말과 글로 표현을 할까?
톨스토이의 글은 여러번 읽을 때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읽을수록
그 깊이와 느낌이 매우 다르다.
유소년기에 톨스토이를 처음 만났을때 (중학교때까지)는 우화나 사례를 통해
인간다운 삶, 고결하고 깨끗한 삶, 그리고 신 안에서 누리는 평화등을 설파하는
신부님 또는 수사님의 모습이었다.
청년기 때의 톨스토이는 거대한 플롯과 캐릭터, 스토리를 엮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 같았고...
한창 사회 변혁 운동으로 고리키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을 섭렵할 때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할 딜레땅트의 고뇌를 깨닳았던 것 같다.
그 때, 읽었던 또 하나의 책 "강철은 무엇으로 단련되는가?"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 ㅎ 아직 저자도 기억되는데 책 내용은 고리키의 "어머니"와 자꾸 겹친다.
여행이 끝나고 창고를 뒤져 그 책을 찾고 다시 한번 정독해봐야겠다.
요즈음의 톨스토이는 아 이 사람은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굉장한 신앙인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마치 벤허를 댓번 보는 느낌이랄까?
중학교 때 벤허를 학생 단체 관람으로 처음 봤을 때는 그 웅장한 전차 씬이나 인물들의 특성등으로
흥미진진한 오락물 이상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서대문의 푸른 극장, 태멘 회원으로 명작을 봤을 때는
로마 군의 엘리트 의식, 성취하고자 하는 남자들의 욕망, 인간의 의지와 복수심등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중장년기에 벤허는 현실의 척박함에도 의지를 잃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슴을 울렸다.
얼마전 평촌의 심야 영화로 감독판을 대여섯번 째로 봤을 때의 벤허는...
기독교(크리스트교)의 신앙 영화였다.
청장년기 때 보지 못했던...
벤허와 더불어 곁에 항상 계셨던 예수그리스도의 존재가 들어왔다.
그분은 항상 그의 옆에서 그를 지키고 그가 무너지지 않게 부축했던 것이다.
내게도 그럴것이다.
내가 지치거나 세상의 이기심과 욕망에 무너져,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가 망가지지 않게
오십여년을 나를 잘 이끌어주신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것이 내가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덕목임을 새삼 깨닳게 된다.
어찌보면 어려서 부모님들이 성당을 안가면 밥 조차 주지 않으셨던 그 분 들의 염원
교회와 하느님안에서 평화롭고 실수하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이제는 주일 미사를 거르게 되면 느끼게 되는 불편함.
이런 것들이 신앙심을 떠나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보호막이었으리라.
톨스토이도 그렇고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까지
그리고 내 주위의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난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는 지 모르겠다.
다시한번 살아있고, 나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톨스토이와 살아있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먹먹함을 가슴에 품고 늦은 저녁 게하로 돌아왔다.
다음날 상크페테부르크로 갈 준비도 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