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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7일째 _ 이르크추크 도착... 아, 데카브리스트들과 톨스토이. 그리고 세상의 모든 젊음이여!

치곡능화 2019. 4. 11. 12:35

 

혹시 데카브리스트란 말을 아는가?

내가 중학교 2학년때 배웠던 세계사에서는 어설픈 일본용어로 데카당(데카黨)의 반란이라고 적혀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 버킷리스트에 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끼어 넣은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시절 (꼴랑 15살 즈음) 세계사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다가 느낀, 그 강열한 기억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위기감을 느낀 유럽의 왕실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켰다.

로베스피에르등의 혁명정부와 과도 독재 정부들이 그를 수습하지 못하는 와중에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프랑스를 지키고 다시금 황제로 등극한 즈음이었다.

전 유럽이 나폴레옹 수중으로 떨어졌으나,

오직 동북쪽, 불모의 동토 러시아와 섬나라 영국만이 나폴레옹과 대치하고 있을 때,

나폴레옹은 주변 제장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러시아 정벌을 감행하였다.

당시의 러시아는 넓은 국토와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밀농사, 유럽 수출등으로 국부를 축적해

신흥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나폴레옹이 정확히 어디까지 정벌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스크바는 아니고 당시의 수도였던 상페테부르크, 이후의 레닌그라드 정도 아닐까 싶다)

어째튼, 러시아의 초공작전(모든 식물과 곡물을 태우고 퇴각하는 전술)과 겨울의 추위에 패전하게 된다.

이후 영국의 반격등에 결국 세인트헬레나 섬 유배를 떠나게 된다.

 

데카브리스트란 러시아 사관학교 출신의 군인들로 나폴레옹 전쟁 때, 참전하고

승전 배상회의 (아마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기억된다)에 참석했던 장교들을 일컷는 말이다.

또는 그 생각과 행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서 당인(정당인 개념, 일본식 표현), 데카당이란 표현을 쓴다.

(다른 일설, 다른 해설에는 데카라는 뜻이 러시아의 12월이라는 말이 있다. 혁명한 날과 달을 표현한 말)

이들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니 세상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상과 다른 것이다.

자신들은 야만인이었고, 프랑스는 당시 세계 최고의 도시에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봉건중세시대가 아니고 르네상스와 산업혁명기의 엄청난 속도로

민주주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에 돌아가 짜르(황제)에게 개혁을 건의하였다가 그것이 거부되자

입헌군주제와 농노폐지등을 포함한 무장 쿠데타를 일으켰다(우리의 갑신정변과 비슷함).

이것이 하루만에 진압되는데...

(이미 당시에 노예란 개념이 부당한 것을 깨닳은 것이고 이때가 1800년대 초인데,

우리나라는 100여년 후, 갑오경장으로 법으로 발의되고, 실제로는 일본 제국주의 때 폐지된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늦었다. 사실 인구의 20% 가까이 같은 사람을 출생의 이유만을 들어 노예로 착취하는 것은

엄청난 범죄이자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갖는 경제불균형이다. 그런 나라가 발전 할 수는 없다.

누구던지 자신이 갑이되어 타인을 노예로 부리고 싶다. 단, 그 반대의 경우라 상상해봐라.

그건 생존과 인간 존엄에 위배되는 범죄와 다름없다. 그런 제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비효율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갑질이란게 그렇게 나쁜 것이다. 자신이 갑질을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인권침해가 된다.

자기중심적인 사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느끼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저지르는 범죄이다.)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으로 주동자 5명을 죽이고, 120명을 시베리아로 유배보낸 것이다.

그 시베리아 초입이 이르크추크이다.

그 시베리아 유배를 보냈던 대표적인 사람이 발콘스키 공작으로 톨스토이의 친척이다.

애초에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는 모두 3부작으로

1부에 프랑스와 러시아의 전쟁기간의 인간 존엄 부분을 다루고

2부에 데카브리스트의 이야기

3부에 데카브리스트 아내들의 순애보를 다루려했다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것은 1부, 그만으로도 위대한 인간 서사시인 "전쟁과 평화"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는 당시에 그 발콘스키 공작등 유배를 보냈던 데카브리스트들에게는

당시 사회 지배층인 귀족의 아내들이 있었는데...

당시 규범에 의하면 그런 반역자에게는 파혼을 하고 재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녀들은 남편을 찾아 지구 4분의 1을 헤매어 이르크추크로 이주한 것이다.

그곳에서 프랑스 식 저택을 짓고 살롱문화를 전파하였다.

현재에도 이르크추크에는 그런 프랑스 식 저택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로 인하여 시베리아의 파리란 말이 있고

또 그 문화와 애티튜드 자체가 이후에 브나드로운동(민중 속으로, 농촌 속으로, 우리의 일제 강점기 때,

그리고 독재 정권 시기의 야학과 비슷한 개념임)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 비극적인 상황과 애틋함...그리고 대문호 톨스토이가 캐취한 문학적 플롯...

 

그것이 나를 이르크추크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꿈꾸게 만들었었다.

 

이 동질감은 아마도 1980년대 야학과 세미나, 서클 활동으로 선배들에게 세상에 대한 진지하고 치열함,

또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엄숙한 의무를 느끼고 행동했던 시절을 회상한다고나 할까?

오직 긴 인생에 있어서 순수하게 빛나던 그 때, 그 시절

"환한 길이 눈이부셔 흙길로만 걷던"

(참고로 이 글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1년 선배이신 홍기복 형의 싯귀에

있는 시어이다. 삼십오년 전의 글인데도 유독 가슴에 남는 글귀이다.

저작권 차원에서 밝힌 것이고 그 형이 지금 아프시다고 한다. 쾌유를 바란다.)

그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 할 수 있는 요즈음의 삶의 모습이다.

 

이르크추크 역에 내려서 가장 첫 행동은 구글 맵을 켜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아주 중요한 점은 세상은 이미 구글의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안드로이드 체제라고나 할까?

세계 어디가던지 스마트 폰으로 쉽게 소통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우기 러시아는 데이터 비용이 매우 싸다.

2만원이 안되게 20기가의 유심을 살 수있다. 동쪽부터 서쪽 끝 상크페테부르크까지...

(우리나라의 데이터 비용은 캐사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SKT, KT, LGT 삼사의 담함으로 너무 비싼 요금제이다.

거기에 주요 상권의 1층에 위치한 이동통신 매장에서 눈탱이까지 맞으면

한달에 12만원 가까이 요금내는 사람도 보았다. 나도 불지불식간에 새폰 갖고 싶어 사면

2년 약정에 총 300만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한 경우도 있다.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약정기간과 할부원금 따져 때에 따라서는 자급제폰을 사고

좋은 조건, 현금 선급 지불로 한 20여만원 내면 할부원금 0원짜리 폰으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더우기 난 신형 노트씨리즈만 항상 산다)

2년동안 내는 총액이 100만원이 안들어간다. 이 3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행위를 예전에 뽐뿌질이라고 했고

지금은 비공구매이다. 단통법은 박근혜 정권이,

그 딱갈이 최경환등 무능한 관리들이 통신사들 배불려주기 위한 악법이다.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

 

데이터 도시락, 하루 무제한 데이타 이용권...

그 모든게 사기다. 적어도 러시아에서는

차라리 유심을 끼워놓고 데이터를 쓰는게 훨씬 싸다.

28일동안 충분히 데이터 쓰고도 5기가 가까이 남아서 다른 여행자에게 환전해주면서 서비스로 줬다.

 

구글 맵에서 주요 관광지와 가는 방법, 비용등이 순싯간에 캐취할수 있다.

가는 방법은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 그리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구글 번역기 이용하는 팁을 밝힌다.

나도 처음에는 한국어 Vs 러시아 어, 러시아 어 Vs 한국어가 너무 안되 짜증났었다.

영어의 단편적인 도치법 파괴된 문장과는 수준이 틀린 오역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가 문득 현지인과 대화를 시도하다가 깨닳은 점은

너무도 당연하게 구글은 미국 앱,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다.

직접 사용해보면 알겠지만 한국어 Vs 영어는 거의 90% 이상 잘 번역된다.

영어 Vs 러시아 어 또한 그렇다.

간단한 영어로 작문하여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매우 잘된다.

마찬가지로 러시아러를 음성으로 듣고 영어로 번역한 다음 다시 한국어 과정을 거치면

최소 80%이상 알아들을 수 있다.

내가 그래도 학력고사 영어 2문제 틀렸던 사람이고 한 때는 종합영어 씹어 먹고,

대학 졸업전 VOCA22000 외우고 다녔던 사람이다.

네이티브 스피커 한테만 약하지 제3세계 사람들의 영어는 그리 어렵지 않다.

통하고 정확하면 되지 문법이나 고급영어 진짜 필요없다.

제3세계 영어 구사자들은 DATA와 Datum 구별할 필요가 없고

center와 Centre를 구별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번의 전환을 하면 매우 잘 통한다. 한국어를 영어로 먼저 하고,

그다음 그 영어를 조금 문법에 맞게 보정 한 다음,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거의 백발백중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르크추크의 구글맵을 조회하면서 깨닳은 점은 이 도시가

바이칼호와 그리로 흘러가는 앙가라 중간에 존재하는 넓은 평야 지역이라는 것이다.

 

(얼치기 풍수지리 처럼 구글맵이나 구글 어스를 통해 도시를 늘였다 줄였다하면서 보게 되면

깨닳게 되는 단순한 사실이다.)

이 도시에도 신도시와 구도심이 있고, 관광지와 관청등은 구도심 중심부에 있다.

주로 그곳 광장(사회주의 국가였으므로)에는 레닌 동상이 있고

언제나 그렇듯이 혁명과 그를 지키려 순국한 국가 유공자들의 추념비가 있다.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등을 통해 숙소와 방값을 조회해보면 당연히 교통좋고 관광지 근처가 비싸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그랬지만

도시마다 아르바트(이뜻을 잘 모름, 아마도 아르바이트에서 파생된 것이라 추측함) 거리가 있고

굼(굼백화점이란 러시아 지명이 있었는데 굼 자체가 백화점이란 뜻임)이 있고

마약(등대). 반야(사우나)등이 있다.

그런 곳이 비싸고 도심에서 멀수록 당연히 싸다.

조회하다가 역 근처의 500미터 내외에 하루 700루블짜리 방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시내로 택시 타고 가야 하는 어려움도 없기에 예약을 하고 직접 가보니

꽤 깨끗하고 훌륭한 숙소였다.

여기에 짐을 풀고 간단히 지난 3-4일간 기차안에서의 찝찝함을 떨쳐내고 시내로 나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생활의 팁 한가지 더!!

열차 안에 샤워실도 있다. 가물가물하지만 약 400루블이면 차장에게 이야기 해서 샤워할 수 있다.

마치 코인 캡슐룸 같이 좁디 좁고 사정은 열악하다. 그래도 여행중의 샤워만큼 심신을 쾌적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평상시는 샤워를 좋아라 하지 않는데...여행만 가면 하루에도 몇번씩, 될수 있으면 자주 하고 싶은게 샤워이다.)

혼자서 배낭 매고 다니는 여행에 있어서 호스텔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비용이 매우 적게 든다.

대다수 호스텔에 락커도 있고 집은 그곳에 보관하고 침대 한칸만 하루 저녁 이용하는데 만원정도 밖에 안든다면

꽤 훌륭한 숙소이다.

안전과 위생이 중요한데...안전은 그리 위험하지 않고, 위생은 조금 가려운데...

미리 가지고 간 계피액을 뿌리면 가렵지는 않다.

(이 계피액은 만들기 쉽다 세계 어디가던지 계피가루, 나무는 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

제품도 많지만 이를 물에 좀 담궈둔 다음 침대, 매트레스에 뿌려주면 진드기등 다 도망간다.

가렵지 않다. 이 팁은 다른 여행자에게 얻든 것이다.)

또, 블라디보스톡에서도 그렇고 도심에서 한 2-3키로 정도 떨어져서 걷기는 조금 벅찬 지역의 방값은 매우 싸다.

차라리 그곳에 방을 정하고 어차피 잠과 샤워, 아침 한끼 해결하는 곳이다.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고 다닌다면 훨씬 저렴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이즈음에서 한번 더 삼천포로 빠지겠다.

사실 이 글의 완성은 여행 갔다와서 거의 8-9개월 이후에 완성하는 것이다.

굳이 쓰고자 하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가 어느 선배님이 계속 읽고 싶고 완성시켜보라는 권유에

약간의 편집을 거쳐 완성하는 것이라.

정확한 기억, 가격등이 틀릴 수도 있고, 또 갑자기 최신 이슈가 튀어나 올 수도 있다.

 

여기에 택시와 호스텔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택시의 생존권으로 안따까운 선택을 하신 분들도 계시다.

그 분들의 생존을 위한 선택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세상의 대세인 쉐어이코노믹, 공유 경제에 대해 생각을 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딜 가더라도 이 공유경제의 영향으로 우버나 막심, 구글의 길티...

엄청나게 많은 앱과 프로그램등이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의 다양성에 마춰주고 있다.

또, 숙박도 마찬가지 이다. 에어비엔비나 호스텔등...

매우 다양한 대안이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 또는 사회적 민주주의 체제에서 허가권을 정부에서 독점하고 그 영업권으로

특정 산업 종사자를 지켜주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나마 진보 정권이라서 그에 대한을 만드느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지, 지난 정부 같으면 사업자의 이익,

기득권의 이익에 맞게 법으로 강제했을 것이다.

자신의 재산권 (집이나 자동차)으로 자신의 임의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나라는

북한과 한국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 있어서의 공유경제는 철저히 막혀있다.

마치 갈라파고스 증후군처럼 한국만 왜곡된 경제체제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있다.

계속해서 이익을 위해 승차거부할 것이고, 법인 택시나 개인 택시는 자신의 차에 승객 따위가 잠시 이용하는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담배피고, 음악 선택하고, 종교나 정치 이야기 할 것이다.

그 차는 자기것이라고 생각하고 승객은 잠시 돈 내고 이용할 뿐이고 그 모든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여지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작게는 택시나 숙박업소의 상황일 수 있지만

크게는 경제 자체가 소비자나 공급자의 선택이 강제되고 왜곡된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될수 있다.

곧 5G 시대, AI 시대가 올것이다.

자율주행, 자동 및 전기 차가 대세일텐데...

물류나 택시등이 얼마나 밥그릇 싸움하면서 그 자리를 담보할지 모르겠다.

또 자신의 밥그릇만 중요하고 시민, 소비자의 불만과 대안은 언제까지 눈감아야 할까?

진보정권의 태생적인 한계가 세상의 흐름과 개인의 이익(사익)보다 원칙, 소신,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약간은 교조적 성향을 갖고 있다.

이를 이용해서 일부 특정 세력들은 끊임없이 징징대며 울어댄다.

보수정권 9년 동안 그들은 어떤 행동을 했는가?

안통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아무 행동도 없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정부 욕만 하다가...

이제 정권이 바뀌니 거리로 달려나가 밥그릇 챙기려하고 있다.

호의가 지나치면 권리인줄 안다.

울며 떼쓰고 드러누우면 되는 줄 안다.

왜냐하면 진보는 착해야 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싫어 보수적 성향을 띄고 계신 분들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사람은 자신의 이기심외에는 모두 잘못된것이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무조건 대응을 잘못했다하고 힘으로 그런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막으라고 주문한다.

왜? 내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곧 깨닳게 되리라 그게 내일이 아님이 아님을...

내 자식이 당할 일이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므로 최소한 우물에 침 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 박소선 여사도,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박정기님도,

김훈 중위의 아버님 육군 소장출신의 장군님도 다들 평범하게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반사회적인 성향으로 생각하고 

또는 그를 프레임으로 악용하여 정치적으로 이득을 얻어내려는 세력에 동조하여 '빨갱이'라고 

치부하였으리라...

내일이 아니니까 세월호 5년동안의 유족 행동이 지겹고,

1980년의 광주에는 북한군이 그 호기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내일이고 내가 살아가는 지역의 일이라면?

그로 인해 내 자식의 인생이 끝났을 때 어떤 결과로 다가올것인가?

아마도 나의 삶도 종말을 고할 것이고, 남은 삶은 지옥일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행동에 이해는 하지 못하더래도 최소한 공감할 줄 아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아직도 여성이 성추행 당하는 일이 그들 스스로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고,

그럴 빌미를 주었다고, 피해자를 두번 상처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들이다.

최소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입을 다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리라.

어설픈 자기중심적 사고로 말은 하고 싶고, 그 말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준다는 것도 깨닳지못하고

말로 폭력 행위를 하는 것이 범죄행위이다.

내가 무슨 범죄행위를 했냐고 길길이 날뛰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장차, 한국 사회도 변호사가 많아지고 소송이 일반화되면 그 반대급부를 받게 될 것이다.

여지껏 세상을 살다보니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에 의해 무너지더라. 꼭.

강해보이게 하려고 그리하여 타인이 무시하지 못하게하고 또는 그 단호함과  이익추구 성향으로

타인에게 상처주고 내 이익을 확보하는 습관을 갖는 순간...

또 다른 이기주의자, 자기 중심적인 사람과 갈등하다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이후, 불모지에서 생존하다보니까 경쟁 위주로 타인에 비해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기가 꽤 오랬동안 존재했기에 그런 애티튜드가 존재했으리라.

'모난 돌이 돌 맞는다.'

'먹히지 말고 먼저 먹어라'

나와 내 앞의 3년 위 선배들(정확히 그때부터 교복자율화와 전두환 정권의 총학생회 부활이 시작되었기에

그 세대는 아마도 58년 개띠의 연합고사, 학력고사 세대와 더불어 획을 긋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70년생 이전까지의 낀세대들은 이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리라.

물론, 70년대 이후도 부모나 환경, 교육의 영향으로 구시대보다 더 꼴통인 사람도 존재하겠지만 대다수 극히 개인적이고 쾌락적인 성향을 그 이전세대보다 갖고 있어 번잡한 일에 말려드는 것을 싫어하는 애티튜드를 갖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와 방식이 아직도 58년 개띠들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현재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그 비슷한 전후 2-4년 내의 사람들이다. 최고 경영자들 또한 마찬기지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러저러한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하면서 현지와 비교하며 많은 생각을 할수 있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무슨 여행이 풍광만 보고 오는 것이랴?

 

저렴한 숙소와 대중교통을 이야기하다가 너무 나갔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자.

 

결국 블라디보스톡이 제일 비싸게 숙소와 식비등 비용을 들어간 것이다.

한마디로 호갱짓을 한것이다.

이 이르크추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모스크바와 상크페테부르크에서 호스텔을 잡았을 때는

주말을 꼈는데도 불구하고 700-800루블에 일박을 했다.

모스크바는 예르지느이라는 패스도 있어 아주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

또 이런 갑작스럽게 발생되는 각종 해프닝, 체득하게 되는 현지 문화등이 여행을 다채롭게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국내인이 미리 짜놓은 패키지 여행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다.

패키지가 편안하고 안전하고 쉽고 비싼 비용이라면 자유여행은 그 반대의 개념이다.

(비싼 비용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첨언한다.

그렇다 이거저거 따지면(특히 호텔의 가격) 실제로는 패키지가 더 싸다.

이유가 마이너스 옵션 때문일 것이다. 현지의 지상비를 현지 여행사가 떠 안고 쇼핑등으로 수익을 해결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의 여행 경비가 나올 것이다. 하다못해 쇼핑이 안터지면 가이드 팁이래도 100불(11만원)씩은 지불해야 한다.

이런 왜곡적인 경제토대가 가격을 왜곡하고 여행 자체를 왜곡한것 같다.

정답은 없다.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르크추크의 게스트하우스(이하 게하 또는 호스텔이라고 표기한다)는 이르크추크역 근처 500미터 내외에 있는 것을 택했다. 위에서 밝힌 호갱짓을 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일단 배낭이 너무 무거웠다.

역사에서 택시나 대중교통을 타려고 준비했지만 블라디보스톡과 달리 여기서는 막심 어플이 통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하도 택시 눈탱이가 심하다는 말을 들었고(어느정도냐하면 일반 세워진 택시와 요금을 협상하여 차에 타고 오분도 안가서 차에 내리면 별로도 캐리어 또는 배낭비도 따로 달라고 협박한다고 한다. 이후에 나도 당했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시내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의 게하를 검색해보니 500미터도 안되는 곳에

꽤 적당한 가격의 게하가 있었다.

 

인상은 기숙사 사감과 같이 날카롭게 생긴 호스텔 주인,

그러나 아주 편안 말투를 가진 그녀에게 침대를 배정받고 락커 키를 받았는데 아뿔싸...

락커가 매우 작아 내 배낭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특별 대우로 창고와 창고키도 받아, 샤워 후, 옷을 갈아입고 배낭은 창고에 넣어두고 문을 잠그고 시내로 나갔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구글의 위대함.

집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시내의 원하는 곳까지 시내버스 번호와 오는 시간, 가격까지 다 알려준다.

일단 시내의 혁명 기념비, 레닌광장으로 해서 앙가라 강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저녁 즈음의 앙가라 강변은 매우 아름답고 한적했다.

여기에도 그리스 정교 교회도 있고, 카톨릭 교회도 있었다.

여행중 잠시 성체조배라도 할까 싶어서 가톨릭교회를 갔는데...

운좋게도 거기서 음악회를 하고 있었다.

300루블 우리나라돈으로 약 6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두시간동안 아름다운 성음악들을 들었다.

길에 나오니 거리는 어둑했고, 거의 모든 상점들이 철시하고 있었다. (9시 즈음. 이르크추크는 시골도시정도이다.)

토마토와 오이와 빵등을 노점에서 사서 게하로 가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들어갔다.

내일 7시에 이르혼 섬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일찍 자야한다.

또, 오늘 늦어서 가지 못한 발콘스키 공작의 집도 가야하니,

다음날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