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10일 째 _ 바이칼 호수(후지르마을 이야기 2)
새벽 두시 넘어까지 음주를 했는데도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졌다.
전날 이르크추크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락커에 큰 배낭을 넣어두고 잠근 다음, 간단한 복장과 물등을 담은 작은 배낭을 챙겼다.
피켈까지 들고 식당에 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북부투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국물 떡볶이에 맥주, 보드카 음주를 해서 그런지 아침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커피 보다는 차가 좋을 것 같아서 어제 공짜로 얻은 티백을 뜨거운 물로 우려내 홀짝였다.
버스가 늦는다.
아홉시가 다되었는데도 오지 않는다.
분명 8시에 버스 온다고 했는데... 이 러시아 인포하우스의 직원이 뻥쟁이인지
워낙 시간관념이 없는건지....
9시가 다될 무렵 어제의 대전 청년이 들어온다.
자신도 북부투어 신청했다는 것이다.
티켓을 보니 나랑 다른 차량이다.
9시가 넘어 부천 교환학생이 오더니 어떤 때는 열시에 출발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나에게 커피 한잔 가져다 주었다.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차가 왔다해서 나가보니 작은 미니 버스이다.
봉고보다 작고 다마스보다는 큰...
작지만 높아서 비포장 도로에 특화되어있는 버스다.
근데 제작년도가 이차대전 때라는 귓뜸이 있었다.
버스안에 동양인은 나 혼자 뿐이다.
버스는 출발했고 이르혼 섬의 해안도로를 따라 6-7시간의 이르혼섬 북부투어가 시작되었다.
중간에 간단한 점심도 준다.
절경도 많고 가격대비 볼만한 투어이기는 하지만 비포장 도로라서 너무 흔들리고 바람이 세었다.
어제 저녁의 숙취도 있고 좀 울렁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귓동냥으로 들은 썰을 풀어보겠다.
왜 바이칼 호수를 인류의 시원, 한국인의 시작이란 표현을 쓰냐하면
예전에 빙하기가 끝날 즈음에 세상은 지금의 위도 체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과 정반대 기후가 존재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적도나 중반부는 매우 추워서 사람이 살 수 없었고
북극쪽과 이 시베리아가 사람이 사는데 적당한 기후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바이칼 호수 주변에 인류의 시작되었고 그들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전설 및 신화가 이 세상을 주관 하는 탱그리 신 (이건 몽골 신화에 나오는 부분이다.)에게는
13명의 아들이 있고 그들이 유라시아 곳곳에 종족을 번성 시켰다는 것이다.
위의 부리야트족 매듭 장대는 그 13명의 아들을 표현하는 곳이고
한국의 성황당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니 아예 성황당과 돌무덤이 있다 ㅎ)
많은 동양인들이 그 원류를 찾아 이 바이칼을 헤메이고 있다.
가격에 비해 절경을 보고 온 북부투어를 마치고 다시금 후지르 마을에 도착하니 오후 4시경이었다.
게하로 돌아가지 않고 니키타하우스 및 후지르 마을을 돌아다녔다.
니키타 하우스에 가서 커피 한잔 하였다.
이곳이 예약 실패한 니키타 하우스 이다.
이곳 이르혼 섬에서는 가장 큰 게하이다.
총 13개의 별채로 이루어져있다 한다.
13개 무슨 연관성 느껴지지 않는가?
식당에 가니 아직 브레이크 타임이라서 커피 밖에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차 한잔 시켜놓고 이 니키타하우스를 만든 분과 그의 디테일을 느껴보았다.
이 니키타 하우스를 만든 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인류문화를 전공하신 교수님이 은퇴하시면서
와이프인 니키타와 함께 이 곳을 직접 꾸몄다고 한다.
자신이 전공한 바이칼, 몽골의 신화로 13개의 전각을 각 종족별 특징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디테일이 엄청 나다.
한국의 솟대문화와 성황당 문화도 있다.
이곳에는 티벳과 독일 식 건물, 문화도 있다.
한국의 솟대까지 표현하는 이 디테일...
이곳에 줄 서서 숙박하고자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한줄의 신화, 문화적 플롯으로 이야기와 상징, 그리고 사업을 이뤄낸
그 눈높이에 경의를 표한다.
마치 어려서부터 데이트하면서 지나치던 이태원 골목길을 경리단 상권으로 만들어낸 사람같이
그리고 요즘 수원 화성 행궁의 허름한 골목집을 복고 감성의 카페로 바꿔내는 그들의 눈높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르혼 섬에 밤이 왔다.
북부 섬 일주를 해서 그런지 어제와 같이 한국 60년대와 같은 어둡고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신화의 세계가 느껴져 매우 정겨운 저녁이었다.
이르혼섬의 마약반야에 대해 들었다.
반야는 사우나, 마약은 등대, 등대 사우나란 것이다.
해안 입구 즈음에 작은 통나무 집으로 사우나가 있다.
이용 요금은 50분 기준으로 1500루블 정도, 보통 최대 6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 마약반야가 낭만 적이라고 한다. 특히 심야 시간에 사우나를 하면서 그 앞의 바이칼 호수에 뛰어들어 몸을 식히면
청춘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에 발을 담그면 5살 젊어지고 수영을 하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 ㅎ 이런 개뻥
근데 불법이겠지만 호수 앞의 엄청 넓은 바다와 같은 곳에서 사우나를 하고 바로 물에 뛰어들수 있다니
이런 매력적인 사우나가 또 어디있겠는가?
해수 노상 온천이 있어 뜨거운 온천물에 몸 지지고 더우면 바닷가에 뛰어든다는...
어제의 한국 멤버들과 반야 시간을 예약하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가봤는데
반야하는 러시아인만 있고 관리인은 없었다.
전화번호가 적혀있어서 전화해보니 영어를 전혀하지 못하는 러시아인이었다.
해는 저물고 자작나무 태우는 사우나의 불빛에 의지해 약 3-40분을 기다리니
사발이(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두명의 남자가 나타나 기존에 사우나 하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뒷쪽의 보일러 실 같은 곳에 싣고 온 자작나무 더미를
집어 넣고 가열하였다.
그들에게 다가가 반야 예약 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까의 그 영어를 하지 못하는 러시아인다.
번역기를 손짓 발짓하며 대화하려해도 어둡고 시간 걸리고...
그들도 지쳤는지 니엣,니엣(노, 노) 하며 돌아가려했다.
그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더 정확히는 천사가 내게 나타났다.
언젠가 어떤 글에선가 내 인생에 멜로는 더 이상 없었다라는 표현을 한적이 있다.
나도 한 때는 사랑 받아 본 적도 있고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한 사람을 사랑 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인연으로 발전 하지 못한 것에 절망했고 내 마음은 닫혀졌다.
원래부터 여자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얼굴이 예쁘고 성격이 좋고 마음이 착한 것을 깨닫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나이를 먹은 만큼 자신감도 줄어들고, 시도 조차 귀찮아진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런것을 일소에 날려버릴 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그것도 나를 도와주기 위해...
어스름한 해안가에 앉아 있던 그녀는 일어나 흥정을 벌이는 우리에게(나와 마약반야 운영자)다가와
러시아 말로 머라머라 한 다음 영어로 내게 말했다.
오늘 저녁, 새벽 1시까지 예약이 꽉차있고 내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풀로 예약되어 있으며
아침 10시 즈음 한타임 빈다고 했다.
웃으면서 내게 영어로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반야의 모닥불에 비쳐지는 순간,
헐... 내 생애에 현실로 보기 힘든 미모의 여성이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 요즘 대한외국인인가라는 퀴즈 프로그램에 러시아 여성으로 나오는 분 정도의 미모?
키 170정도에 몸무게는 50키로도 안나갈 정도로 엄청나게 가는 체형에
나 어릴 때의 소피마르소 만큼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는 러시아 미녀였다.
예전에 제지회사에 다니면서 남양나이론, 비비안이라는 회사에 거래한 적 있는데...
그 곳의 모델이었던 러시아 미녀들 만큼, 아니 외모로는 그 이상의...
러시아에 온 이래 가장 미녀를 만난것이다.
그것도 그녀가 나를 위해 통역을 해주었다.
나는 내일 이르크추크로 돌아가야한다.
오늘 저녁 밖에 시간이 없는데... 혹시 예약 취소가 생길 수 있냐고 물어봐달랬다.
그들은 사우나 내에서도 술을 마시면서 사우나를 하고
최대 6명 정도가 들어가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예약 취소되는 경우가 없다 한다.
대륙인 러시아 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중국인처럼 배짱 장사하는 경우가 많다.
ㅎ
어째튼 그녀에 친절에 감사를 표하고 우리는 후지르 마을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나스타샤
고향은 에카테리나버그이고 대학생 22살이라고 했다.
지금 니키타하우스 리셉션 룸(안내 데스크)에서 일한다고 했다.
내가 니키타 하우스 예약 실패해서 다른 곳을 얻었다고 하니...
맞다 지금 풀로 차있다고 했다.
내가 아까 4-5시 즈음에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고 커피 한잔도 식당해서 했다니까
기억이 난다 했다.
어떻게 기억하냐니까 동양인의 경우 많지가 않으니 자신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후지르 마을로 넘어오는 길에 전망대와 카페가 있어 커피 한잔 하자니까 웃는다.
자신은 밤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커피말고 주스를 마시자고 하니까 왜 그래야하냔다.
그래서 아빠 같은 사람이 고마워서 사주고 싶다니까 싫다고 한다.
ㅎ 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멜로는 없다니까 절대.
그래도 몇십년만에 내가 어떤 여성의 외모에 혹해서 차 한잔 하자고 권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지릿지릿해졌다.
매우 기분이 좋았다.
괴테가 70이 넘어서 샤롯테란 여인에게 취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명저를 남겼듯이
누구를 좋아할 수 있는 감정이 있었다는 것 조차 고맙다. ㅎ
후지르 마을에 접어들면서 내가 당신은 매우 예쁘다.
마치 모델이나 영화배우 같이 아름답다하니까 진짜냐고 반문한다.
자신은 그런 소리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인기도 없고 자신과 같은 사람은 천지삐까리라고 한다.
아마도 미의 기준이 다른 것 같다.
한국인은 귀엽고, 어려보이는 외모를 선호하는데
러시아인들은 선이 굵고 도도하고 강해보이는 외모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예전에 중앙아시아에서도 소피아로렌이나 키메라 같이 눈이 깊고 강해보이고
육감적인 사람들을 그들은 선호하는 것 같다.
난 무섭던데....ㅎ
그래도 매너있게 그녀를 니키타하우스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녀도 리얼리 땡큐라고 한다.
난 다음에 다시 바이칼에 온다면 꼭 니키타 하우스를 예약할 것이며
떠나기 2개월전부터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에 당신이 계속 일하고 있다면 커피도 한잔하고
내 카메라로 당신의 아름다움을 남겨주고 싶다 했다.
그녀는 그날을 기대하겠다고하며 웃으며 우리는 헤어졌다.
게하로 돌아오니 28살의 대전 청년과 21살의 부천 학생이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했다고 한다.
짐은 락커에 있는데 왜 안들어오는지...
북부 투어에서 미복귀하여서 경찰에 신고해야할지 어떨지 걱정했다고 한다.
시간을 보니 열시 반이 넘었다.
나는 그들에게 제안을 하였다.
나는 마약반야를 하고 싶어서 거기까지 갔다왔고 오는 길에 나스타샤도 만났다.
오늘 예약이 꽉찼다하니까 우리가 반야 준비해가지고 가서
1시 마지막 타임 예약이 끊나면 두시에 추가 영업을 신청하고 돈을 두배로 주더래도
마약 반야 하자고 꼬득였다.
주인이 영어를 못하니 교환학생도 같이 가서 통역해달라 추가 알바비가 필요하면 내가 챙겨주겠다.
새벽의 바이칼 호수와 그 해변에서의 마약반야.
너무 멋지지 않냐고 꼬득였다.
그들 모두 동의했다.
사천루블을 준비했다.
약 칠만원정도 되는 돈이다.
추가 영업 요청하는데 두배인 삼천루블 주고
그를 통역해주고 일을 성사시켜주면 성공보수로 천루블 주려했다.
맥주도 여러병 챙기고, 리스트비안카에서 사온 잣과 매우 저렴한
러시아 땅콩, 깨강정도 안주로 챙겼다.
(우리나라 천원 정도인 자유시간 같은 초콜릿바와 같은 크기인데
러시아에서는 약 삼백원 정도에 땅콩이나 깨, 해바라기 씨등을 꿀로
굳힌 과자가 매우 저렴하고 맛있다)
역시 한시간 넘게 걸려 마약반야에 도착하니
한 떼의 러시아 남녀가 반즈음 벗은,
여자들은 상의도 다 탈의하고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땀을 빼다가
문 열고 달려나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수영하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고,
주변 상관 않고 껴안고 키스하며 젊음을 발산하고 있다.
전혀 나쁘게 보이지 않고 부러웠다.
왜 나는 젊었을 때, 저런거 한번 못해보왔을까?
멀리서 사발이가 나타나고 술취한 젊은이들이 떠나고
가족으로 보이는 자고 있는 어린아이까지 포함하여 5명의 가족이 반야로로 들어가고
불을 추가하고...
내 눈짓을 받은 교환학생이 그들에게 다가가 흥정을 했다.
제법 유창한 러시아 말로 그들에게 추가 영업이 가능하느냐 타진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시간이 열두시 이십여분 정도...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러시아로 대화를 했다.
잠시 후 돌아온 교환 학생은 잠시 기다려라 추가 영업을 할지 어떨지는 사장에게 물어본다했단다.
그들은 운영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직원이었고, 사장은 따로 있다고 한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잘됬다. 잘하면 가능하겠다고 희망 섞인 말을 했다.
어차피 1시가 마지막 영업이고 2시에 우리에게 추가 영업 1타임하면 사장에게 돈 안가져다주고
자기들끼리 천루블 이상씩 챙길 수 있지 않냐?
중국이나 러시아는 아직도 그런 짜웅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국도 예전에는 다 그랬다. ㅎ
이제 우리는 기다리면 된다면서 해안에 자리 잡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흥이 돋아 폰을 꺼내 유투브를 열어 김현식의 "어둠 그별빛"을 틀었다.
적막한 해안에 김현식의 긁힌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 땅위의 모든 것 깊이 잠들고....아아 그 어둠 그 별빛...
난 부끄러움도 없이 큰 소리로 따라했다.
부모들 따라서 반야와 호수를 오가던 러시아 아이들도 신기해서 쳐다본다.
노래가 끝났을 때는 박수도 쳐준다.
한시 즈음 또 사발이가 나타난다.
내 눈짓을 받은 교환 학생이 그들에게 다가가 머라머라 러시아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반야를 마친 러시아 가족들도 떠났다.
그들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전화 통화를 하더니 갑자기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나는 영문도 모르게 악수를 했다.
교환학생이 천루블을 달라고 한다.
나는 천루블 지폐를 건네주니 그들은 그를 받더니 양동이로 호숫물을 길어와서 바가지로 반야 안을 물청소하고
빗자루 같은 걸로 닦아내더니 보일러에 장작 한무더기 집어넣고 웃으면서
사발이를 타고 떠나갔다.
모든 것이 십분도 안된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먼 일인지도 몰랐다.
교환학생이 반야 안하세요? 하면서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난 머여? 하니까 그가 말한다.
우리가 운이 좋았댄다.
1시 타임 예약자들이 예약금을 지급하고도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하니까
술이 많이 취해 전화도 제대로 못받아서 우리가 대신 그 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니 불이 다 꺼질 때까지 새벽 내내 반야 이용해도 된다는 것이다.
다만 돌아갈 때는 반야 문하고 보일러 문만 제대로 닫아주고 가라더란다.
요금도 다 안받고 세명이니 천루블만 내라했다는 것이다.
주변 해안에 아무도 없다.
시간은 새벽 한시이다.
우리는 빤쓰까지 다 벗었다.
여긴 아무도 없다. 우리 한국인 셋만 있는 것이다.
어차피 수영복도 없었고, 야 밤에 누가 트렁크 팬티인지 수영복인지 확인하겠냐는 마음에
속옷만 챙겨왔는데 새벽 한시에 60년대 같이 낙후된 해안가.
30촉 백열등만 반야 입구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반야에 들어가니 엄청난 열기가 몸을 압도하였다.
구조가 방 끝에 철판하고 황토 흙, 돌로 쌓아놓은 보일러 실 벽이 있고
그 앞에는 매우 두꺼워 보이는 주물 물 항아리, 그 안에 나뭇가지로 만들 물빗자루...
교환학생은 그래도 반야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몸이 뜨겁거나 건조해주면 물항아리 같은 곳에 있는 빗자루에에 물을 듬북 적셔 몸에 뿌렸다.
마치 물에 적신 빗자루로 몸을 때리듯....
반야에 쓰는 나무는 모두 자작나무라고 한다.
머 시베리아에 있는 나무는 자작나무가 제일 많겠지만 ㅎ
그를 물에 적셔 그 잎새와 줄기로 몸을 닦아내면 몸에 있는 나쁜 물질과 냄새가 씻겨진다고 한다.
그래서 북구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몸 관리를 한다고 한다.
한 십여분 반야안에서 머물면 너무 뜨거워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호흡이 가쁘고 몸에 열이 엄청나와 몸이 타버릴것 같다.
머 한국에서 원적외선 불가마가 그렇겠지만....
그 때 문을 열고 호수로 달려가 몸은 던지면 된다.
마치 한국에서 건식 사우나로 땀내다가 몸이 너무 뜨거우면 바로 냉탕에 몸을 던지듯...
어렸을 때는 많이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중년 이후에는 조금 조심한다.
갑자기 찬물로 들어가면 심장에 좋지 않은 것 같다.
가슴이 펌핑하듯 마구 뛰며 입술이 파래지며 몸이 꽉꽉 조여드는 아픔도 있다.
8월 초 바이칼이 물 온도는 영상 10도 내외이고 기온은 17도 정도이다.
한국에는 초봄의 날씨이다.
한 오분 물속에 있다보면 이빨이 덜덜거리며 감기 걸릴것 같다.
머리 뒷쪽에 망치로 한대 맞은 만큼 띵하다.
처음에는 바이칼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까지 할 정도로 여유였지만
반야와 바이칼 호수를 왔다갔다하다 보면 그 주기가 짧아진다.
처음에는 십분단위로 오갔다면 이후에는 오분, 삼분, 점점 짧아진다.
그리고 급격하게 체력이 고갈된다.
나중되면 물빗자루 휘두를 힘도 없어지고
바이칼 호수에서 기어나와 반야로 기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힘이 빠진다.
왕복 열번도 못하고 한 대여섯번 정도 한 것 같다.
일어나서 반야의 문고리를 잡을 힘도 없어서
해안에 쓰러져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다.
아 엄청났다.
은하수와 밤하늘의 별들이 불과 백여미터 눈 밖에서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이다.
입이 벌어지고 그 광경에 압도되어 소리가 나온다.
어어어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린다.
큰 한숨으로 몸에 있는 공기를 내 뱉고 숨이 막힐 때 급하게 숨을 들이키며
눈에 손을 떼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아 이 세계에는 나와 은하수, 별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안도, 반야도, 한국인들도...
모래도, 물도, 불 빛도 없다.
이 세상에는 나 혼자 바이칼의 밤하늘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의 감흥을 깨기 싫어서 그 이후의 복귀 과정은 생략했다.
돌아가는 길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봤자.
남자애들 셋이 낄낄거리며 게하로 복귀해서 자는 이야기이고..
바이칼 호수의 감동만큼은 비할 수 없다.)